;ㅅ; scrib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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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깥에 앉아있었다. 휴스턴의 사랑스러운 프랑스식 크레이프 가게였다. 인터뷰가 끝나고는 친구랑 같이 지내고 있어요. 글쎄, 제 고등학교에서만 일곱 명이 여길 다니고 있더라고요. 내 앞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네가 엘리트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걸 보여주는구나. 부끄러워서 손을 내젓자, 필리핀 유학생이었으며 아시아 센터의 포닥을 마치면 맥길의 테뉴어 트랙 어소시에잇 교수로 가게 되었다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부끄러워 할 건 하나도 없어. 

내가 속한 집단은 무엇이든 잘 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다.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어느 정도의 (아주 기본이라도) 제 2 외국어, 수학, 과학, 체력을 위한 운동 한 가지, 교양을 위한 악기 한 가지. 동아리, 봉사활동, 수상경력 등. 졸업식 전 겨울 캠프 파티에서 아이들은 흥분해서 소리쳤었다. 쌤들은 못하는 게 뭐예요? 그날 노래를 불렀던 나는 불편해서 어물쩍 웃어넘겼다.

이것이 엘리트라면 이 집단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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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혼자 비행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안에서의 비행은 더더욱. 이런 저런 일로 몇 번이고 탄 비행기라지만, 국내선의 좁은 통로를 들어서며 백인으로 가득 찬 시선에서 새삼스레 나 자신의 타자성을 외면할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혼자 깨어서 검은 공간을 부유할 때,

어디로든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애초에 돌아갈 곳도 없었다는 걸 온 몸으로 받아들일 때.

나는 홀로 살아있는 일이 무척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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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불행을 전시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글자의 흐름과 단어의 호흡, 그리고 문장의 배열을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차마 그만두지 못한 투정이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으며, 예술가 나부렁이라는 버리지 못한 허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습관이었다. 

나는 교활했고 무척이나 살고 싶어했다. 교활한 나는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했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발판을 빚어 기어 올랐다. 학교의 이름을, 전무하다시피 한 인맥을, 지적 호기심을 끌어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뻗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매우 지쳤다. 사실 런던에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삶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고,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것조차 무엇 하나 처절하지 않은 게 없어 돌이켜 보고 싶지도 않다. 

거기에 대학원 결과까지 매우 안좋다. 나는 사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이 부분이 가장 절망스럽지만. 나는 두 전공 다 3.8이 넘고, 지금껏 대학에서 천 만원을 훌쩍 넘는 펀딩을 뜯어내었다. 명망높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했고, 전미 사회학회 학부생 우수 프로그램에 뽑혀 발표를 했으며, 그 페이퍼를 학술지에 제출했고, 사회학과 우수 학생상을 받았고, 4월에 남부 사회학회에서 다른 연구를 발표한다. 문과, 학부생, 유학생으로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GRE 점수 뿐이다. 어바는 몇 번이고 (방금의 통화에서도) 문과 박사 지원 과정에서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분노했지만, 나는 항상 예외, 소수, 특이사항으로 차별을 넘어오면서 살았기 때문에 (당장 ASA honors만 해도 나 혼자 아시안이고 나 혼자 유학생이었다) 분노는 내게 의미가 없었다. 살기로 결심한 이상 차별은 장벽이 아니라 넘어서야 할 언덕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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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냥 모르겠다. 휴스턴에서 돌아온 후로 아주 피곤했다. 사실 지금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구질구질하고, 너덜너덜하고, 너무 처절했다. 더 이상 소리를 죽이려고 숨을 참으며 울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지쳤고 무엇 하나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아있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 애인에게, 내가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나를 놓아주지 않을 거냐고 물었더니 못한다고 눈물을 또르르 흘려서 (ㅠㅠ) 다물었다. 그냥 그렇게 숨만 붙어있다.

다행히 휴스턴은 무척 즐거웠다. 교활한 나는 인터뷰도 매우 잘했다.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커피 두 잔을 마시며 아침을 먹고 교수 다섯 명과 인터뷰 그리고 리서치 팀 두 곳 미팅을 들어가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일정이 끝나고는 소중한 친구와 휴스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진장인 친구는 나를 너무 예뻐하면서 인생샷도 많이 찍어 주었다. 친구가 정말 깊고 다정한 말을 해주어서 기마령은 줄줄 울었다. 나는 정말 럭키해. ㅇㅇ찡과 ㅇㅇ이랑도 영상통화를 했다. 졸업하고 보지 못한 ㅁㅁ이랑 ㅁㅁㅁ를 만난 것도 즐거웠다. 성노동 연구를 하는 포닥을 만나고 이글루스 이웃님인 종교학 박사 언니도 만났다. 휴스턴은 도시라 먹을 것도 많았고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커다란 갤러리아도 있었다. 정말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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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어떻게 될 지 하나도 모르겠다. 항상 향후 2년 간의 계획은 세워두고 살았는데. 대학원에 가면 5년 정도는 그런 고민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길이 나를 이토록 흔들게 할 줄은 몰랐다. 

나는 허영이 많은 사람이라, 동기 이과 친구들 대학원 입시가 (당연하게도) 정말 잘 되어서 기쁘면서도 자꾸 내가 비교가 된다. 대학원 가려고 작은 대학에 와서 열심히 살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객기 부리지 말고 GRE 학원을 다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 여름에도 나는 정말 지쳐있었다...) 다 부질없다. 문과 대학원 입시가 그냥 어렵다. 이과 친구들 결과와 문과 친구들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인터뷰 온 사람들도 대학원생들도 석사 학위를 갖고 시작했다. 이과는 박사 받고 옵션이라도 있다지만 엠병할 문과는 대학원 나와서 잘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문턱부터 어려운 거야. 

그렇다.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차라리 누가 날 죽여줬으면 한다고 했더니 애인이 그러면 자기가 그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는 무척이나 감성적인 소리를 하길래 싸물었다. 곁에 있다면 좋을텐데. 많이 많이 보고싶다. 대학원은 장거리 청산 하고 싶었는데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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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휴스턴마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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